Skip to main content

텍스트 지향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 16 min read
summerz
summerz

* 이 글은 hochan.NET의 텍스트 지향 운동을 보며 예전부터 조금씩 들던 의문과 생각들을 정리했는데, 능력부족으로 길이 산만해졌습니다. 제가 잘못 파악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글 남겨주세요.

텍스트 지향 운동 (v1.1)

  1. 텍스트 지향 운동의 '텍스트'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최소 규준의 표현 수단을 가리킵니다.
    • 텍스트 지향 운동은 텍스트의 과잉이 불러오는 허위 정보 유포 같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경계합니다.
      • 텍스트 지향 운동의 의도는 문자만 쓰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과잉을 막자는 것입니다.
        • 텍스트 지향 운동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책임있는 텍스트 사용을 권장합니다.
          • 텍스트 지향 운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이루기 위한 지향 수단입니다.
            • 텍스트 지향 운동은 정확한 표현, 정확한 출처 표기를 권장하며, 이것은 인터넷 문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 지향 운동의 띠를 여러분의 웹사이트 귀퉁이에 두르는 것은 이상을 염두에 두겠다는 자기약속입니다. 텍스트 지향의 정신을 떠올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그때는 텍스트를 만드는 표현 수단이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전 처음 이 운동의 취지문 v1.0 을 읽고 머리 속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운동은 문자로서의 정보, 현재 기술로 통제가 용이한 정보만을 위한 게 아닌가 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질문/답변과 의견들을 듣고서는 그것만은 아니구나 싶었고, 취지문은 후에 위와 같은 v1.1 으로 판올림이 되었습니다.

1 텍스트란?

일단 취지문에서는 "텍스트 지향 운동의 '텍스트'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최소 규준의 표현 수단을 가리킵니다." 라고 합니다. 이 때 최소 규준의 표현 수단은 당연히 문자(text)일수도, 소리(sound)일수도, 그림(image)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모두를 복합한 형태일 수도 있겠지요. 당연합니다. 3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자만 쓰자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v1.0 에 나오던 이미지에 대한 언급이 빠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로 취지문에서의 '텍스트'란 용어는 이 운동을 따르는 사람들의 발언과 만나게 되면 다시 애매해집니다. 우선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문자로서의 텍스트를 중요시 할 뿐더러*1 호찬님 역시 텍스트 지향의 영문 표기를 text-oriented 라고 표현했으니 말이죠. '내용'이나 '주제', '유용함', 의미있는' 등의 표현이 아니라 텍스트, text란 것이지요. "문자만 쓰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과잉을 막자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지만 결국은 돌아 돌아 다시 분명해졌습니다.

따라서,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는데, 쉽게 표현하자면 텍스트 지향 운동은 "유용한 의미와 정보의 중심에는 문자 언어가 있으리니 문자 언어를 지향하자"*2 였습니다. 취지문의 여러 항목에도 불구하고 사실 텍스트 지향 운동의 중심에는 "문자 중심의 정보 체계"를 우선시하고 그 체계를 강화하고 정리하려는 운동이라는 것이지요.*3

2 정보의 유용성

그러나, 세상에는 문자 중심의 정보 말고도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는 영상이 우월한 시대"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많이 소비된다고 그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굳이 나눈다면 여전히 세상은 글 읽는 사람들이 우월한 세상입니다. 몇십만년 인류의 역사가 글로 (그리고 도형과 그림으로) 남겨져 왔으며 현재의 사람들도 그 바탕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이렇듯 문자가 이제까지 독보적인 기록과 정보의 수단이 된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그에 비하면 기계 문명과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문자 말고도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더 다양하게 된지는 채 몇백년도 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당연히 그걸 관리하고 체계화시키는 기술도 문자에 비하면 미미하겠지요. 지금은 그게 시험되고 확장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런 견해로 볼 때, 각각의 도구는 그에 적합한 수단으로 기능하여 쓰이면 되는 것이지 꼭 한가지 방법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문자가 소리나 그림, 영상보다 모든 방면에서 우월하기만 한 것*4은 아니니까요.

3 비텍스트 컨텐츠

기호의 차이에 관한 문제라면야 상관없습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시각적인 퍼포먼스보다는 음악이나 오디오북 등의 비언어적인 사운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또한, 색상이나 물체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책장을 펴고 (혹은 모니터를 켜고) 문예 작품이든 광고 전단지든 어느 특정 나라의 언어로 타이핑 된 글(텍스트)을 읽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요.

즉, 컬러의 조합만으로도 의미를 만들어내고, 소리의 질감만으로도 분위기를 단번에 표현하는 시도들 또한 고유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비텍스트 기반의 기술 축적은 분명히 필요하고, 이러한 비텍스트적인 요소들에 대한 정보 구축을 위한 시도도 당연히 함께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텍스트 지향 운동의 의미는 다시 한번 애매해지게 됩니다. 무릇 "운동"이란 단어에 신성함을 붙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여러 운동들과는 달리 이건 결국 기호의 차이*5에서 온 것이니까요. 울면보다 짜장면이 월등히 많이 팔린다고 해서 짜장면이 더 좋은 음식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요.

4 맺음

저는 사실 이 운동의 취지는 당장 많은 사람들이 실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구성, 설계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실험과 과정에 있는 정보와 다의적인 정보는 정돈되고 유일한 정보보다 활용가치가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에는 제 스스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는 방법으로 의미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둘째, 한 개인이 구사하는 언어는 그 개인의 사고를 제한한다.*6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서 오해를 없애려 여러가지 표현이나 가능성들을 쳐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결하고 명확한 방법이지만, 막상 그렇게 쳐내고 나면 본래 표현하고 싶어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것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 텍스트를 지향한다는 표현이 이같은 경우라 느껴졌습니다. 또한, 평상시 언어의 범위가 사고의 범위를 한정시킨다는 말을 믿는데, 근거는 없지만 저는 이 때 언어를 자신이 가진 표현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저는 텍스트 지향 운동의 취지문을 '표현수단을 제한함으로써 그 명확성을 얻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역시 사고의 흐름 자체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을 설계, 운영하거나 무의미해 보이는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정렬하고 가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루는 그 데이터가 현재의 시스템에 적용되길 원하며 통제가 가능한 데이터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술로 이러한 정보통제가 가장 용이한 데이터는 텍스트이고, 인터넷 또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데이터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도 하고요. 즉, 이 운동은 이러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운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텍스트 지향 운동이 취지에서 밝힌 것과 같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제대로 기능하려 한다면, 텍스트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표현과 주제의 진정성, 책임감 있는 컨텐츠를 생산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그 표현을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텍스트 지향 운동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문자로서의 텍스트를 중요시한다고 해서 이 운동이 문자로서의 텍스트만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 그런 의미에서 볼 때 v1.0에서 v1.1이 나름 의미가 확장되어 보이지만 사실 이미지 사용을 지양한다는 직접적인 구문과 Text Only의 Only를 삭제했을 뿐입니다.

*3 만약 그렇지 않다면 텍스트는 내용 (컨텐츠)를 뜻하는 말로 쓰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즉 "텍스트 = 내용 (컨텐츠)"이 아니라면 이 운동은 '웹 깨끗이 사용하기 운동' 이라든가 '의미없는 내용으로 웹을 채우지 말기 운동', 혹은 '정보/문헌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컨텐츠 생성 운동' 등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사실 현재 이미지나 동영상, 사운드 등 비텍스트에 대한 정보수집이나 분류, 활용정도, 보존성 등은 텍스트에 비해 자동화가 상당히 덜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텍스트가 단연 다른 매체보다 우월한 면이 있습니다.

*5 게다가 이 기호는 시각장애인이라든가 문맹자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그들은 텍스트로만 쓰여지기 힘든 "내용 (컨텐츠)"들에 선택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겠지요. 만약 고려한다면? 역시 텍스트 (text)라는 의미 아닌, 효과적인 컨텐츠 혹은 접근성 향상 등의 의미를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6 사피어-워프 가설 (Sapir-Whorf Hypothesis)의 본인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