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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잡담, 대한민국 육군 상병이 하는 일.

· 12 min read
summe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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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내가 다시 군대에 가 있는 꿈을 꿨다. 혼내고 혼나고 근무 서고 점호 받고 하는 꿈. 꿈 생각을 하다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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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분명 변칙적인 일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업무를 다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다. 그리고, 변칙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직업들도 있고, 변칙적인 일을 하는 게 주업무인 직업도 있다. 이 때 변칙은 반윤리적인 것들부터 위법인 것들까지 다양하다. 아, 세상은 우리나라로 한정하는 게 맞겠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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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정상적인 단체는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항상 군대가 떠오른다. 부대마다 사정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병장들은 일 안하고 농땡이를 치는데 급급하고, 이등병들은 어리버리해서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고, 일병들은 생각없이 시키는 일만 하고. 결국 상병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일을 한다. (일 안하고 뺀질뺀질 노는 병장들을 뺀) 사병들 중에서 가장 일 잘하고, 부대 돌아가는 걸 잘 아는 상병.

적어도 내가 있던 부대는 그랬다. 열성적이고 똑똑한 중대장이나 노련하고 능력 많은 행보관을 만나면 모를까, 대부분 실제 사병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언제나 상병들이었다. 그리고, 상병들이 궂은 일을 하려면 후임병들에게 욕도 하고, 뒷통수도 때리고, 발로 걷어차야 할 때도 생겼다. 군기반장부터 해결사 노릇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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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지. 중대장과 행보관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그래야 중대에 더 큰 사고도 없고, 훈련도 잘 뛰고, 전투력측정 때도 높은 점수를 받으니까. 그리고, 자신들은 욕 한마디 덜 하고, 인상 한번 덜 쓸 수 있으니까.

병장들은 말만 많아져서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잔소리만 하고, 일병들은 자기 할일 끝나면 다른 생각 안하고 구석에 짱박혀 담배 피우기 바쁘고, 이등병들은 밖에 있는 애인 생각, 부모님 생각, 초코파이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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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다가 큰 문제가 터지면 상병들은 집중 타격을 받는다. 누가 자살소동을 벌이거나, 휴가 갔다가 부대 복귀가 늦어서 탈영한다는 소문이 돌거나 하면, 병장들도 병장이지만 상병들이야 말로 그날은 죽는 날이다.

중대장, 행보관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며 선임병들 (병장, 상병)을 모아놓고 다그치지만, 병장들은 "곧 전역할 사람이 무슨 애들을 갈구겠냐"며 구렁이 담 넘듯 책임을 피해 도망가고, 결국 꺾인 상병들과 물병장들만 욕을 먹는다. 여기에 한 술 떠서 이제까지 자신들의 군기반장의 부당한 대우가 못마땅했던 일이등병들은 뒤에서 "그러게, 그만 좀 갈구지...", "아니, 우리가 동네 북이야? 왜 만날 우리에게 뭐라그래-", "맨날 일시키고 때리더니 잘 됐다" 등등의 소리없는 멘트를 날리고 이것은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상병들의 등에 정확히 꽂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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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병들은 이리저리 방치되다가 큰 일이 생기면 집중 포화를 맞고, 이를 갈고 더 악랄해지거나 허무함을 느끼거나 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좋든 싫든 병장을 달기 전까진 도망갈 수도 없다.

상병들은 억울하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 모두들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사로 행동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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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밖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구조적인 이유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경우. (자발적으로 신이 나서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들을 직업으로 삼으며 은근히 즐기는 자학변태들은 빼고.) 그들도 전체의 일이 잘 굴러가도록 노력하다가 문득 일이 잘못되서 부정한 일이 드러나게 되면 집중 타격을 받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진행이 되지 않는 일인데, 몇가지 눈 딱 감고 하면 일이 진행되는 것들. 그 눈 딱 감는 일이 몇천만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들도 있을테고, 현행법에는 위반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것들도 있을테고, 내 자신 혹은 내 가족 하나 살아보자고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테고, 나름대로 인류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하며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테고. 일이 잘못되서 그 눈 딱 감은 일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었을 때 판단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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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대로 방치한다. 이른바 이미 사회적 평판이 나빠진 사람이라거나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평상시에는 그저 직장을 가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보다가 일이 크게 붉어지면 욕을 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우리는 한민족 한핏줄이고, 이웃사촌이고, "우리가 남이가-"의 사람들이고,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이잖아 - 평상시에 할 말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신기하지. 그 사람이 갑자기 더 나쁜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주위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새카맣게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해오다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직장이, 일이 더 커지면 그 때 비난하기 시작한다.

보통 그럴 때는 특징이 있다. 평상시엔 무디고 무딘 윤리와 도덕의 날을 바짝 세우는 건 기본이고, 평상시엔 유도리 있게 넘어가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법지식을 동원하기도 하고, 갖은 상식을 동원해 세계적 추세가 어떻다느니 협약이 어떻다느니... 대단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명쾌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 사람들은, 우리는 다 얽혀있으니까. 학교, 종교, 지역, 직장(과 계열사), 취향, 가족, 가문, 사상, 국가 등등이 얽혀있지만 사람들이 비난을 하거나 의견을 주장할 때는 자신의 의견이 단순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끔 느끼는 건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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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평상시에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위법적인 부분을 떼어달라고 요청하거나 거짓말은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면, "이런 유도리 없는 사람 같으니...", "아직 사회생활 덜 해 본 모양인데...", "관례야. 그냥 해"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일자리 유지하고 싶으면 그냥 해-", "네가 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가라-" 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다.

만약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그런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섞여 있다면 더욱 할 말이 없다.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고 책임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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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보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안들키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모나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가지 모순들을 모른 척하며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모순을 깨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

비난, 도전, 회피, 순응, 판단...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자신이 판단하는 거겠지.

나는 어떻게 살까... 문득 짧은 꿈 한번 꾸고 긴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