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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A - William Kentridge 展을 보고

· 8 min read
summe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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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리씨와 함께 MCA에 갔을 때 윌리엄 켄트리지 (William Kentridge)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사실 누군지 전혀 몰랐다. 무식이 죄일 뿐. 무턱대고 전시되어 있는 것들을 봤다 - 드로잉, 조각 그리고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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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흑백인 그림에 포인트를 주는 주홍색, 그리고 파스텔톤 파랑색이 들어있는 드로잉 작품들. 입체적, 공간적인 요소가 가미된 조각들. 흑과 백 (그리고 그림자), 시간의 역행과 흐름에 대한 애니메이션들.

한쪽 공간에서는 그가 만든 짧은 (무성) 애니메이션들을 반복해서 틀어주었다. 모든 작품이 실사를 찍어서 그것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 픽셀레이션 (pixelation) 기법으로 만든 것들이었는데, 7개 중 6개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시간의 역행'을 취했다. (하나는 세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간단한 움직일 뿐이어서 무엇을 표현하는지조차 모를 정도-_-)

그리고, 다시 3개의 공간에서는 (한 곳이 더 있긴 했지만 거기서는 같은 걸 틀어주고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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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작품명들을 보면서 감상을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 그것들은 Drawing for Projection 시리즈의 일부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최근작 'Tide Table' (2003년작). 이 작품을 포함하여 다른 작품들도 목탄 (charcoal)으로 그리고 지우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나가는 것들 - 거칠면서도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다면 'Sleeping on Glass' (2000년작). 뒷쪽에서 프로젝션을 쏴서 보여주는 방식.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 작품을 보면서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감정이 든다는 건 어떤 뜻일까.

'I am interested in a political art, that is to say an art of ambiguity, contradiction, uncompleted gesture and uncertain endings.'

William Kentridge

사전 지식없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정치적인 예술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의 작품들에서는 문명(?)에 의한 파괴와 (차별에 의해) 소외된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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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간단하게 William Kentride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1955년 남아공 (South Africa)의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 출생.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과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대한 작품 활동.
'Drawing for Projection' 시리즈가 유명.

다음은 다른 사이트에서 찾은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들.

신동아 4월호 중에서...

윌리엄 켄트리지 : 생태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식민지 담론

195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사실적인 드로잉 수법으로 긴장감 있는 프로젝션 영화를 제작했다. 역사와 기억, 우리의 몸속에 하나의 재난처럼 깃들인 폭력성을 고발해내는 그의 작품은 고야의 ‘전쟁의 재난’(1810~20)을 떠올린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이 남긴 상처들, 기억, 산업, 인종정치학, 부패와 타락의 풍경을 그린다. ‘프로젝션을 위한 드로잉’이라는, 일곱 개로 나뉜 필름에서 풍경은 기억과 탈기억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언제든 흘러넘치고 변화해가며 예측할 수 없이 전개된다.

그의 작품에 지극히 아름답게 그린 회화적 풍경의 이미지는 아프리카 초원을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말하는 식민지적 수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끝없이 열려 있고 점유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초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위선임을 고발한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착하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텅비어 있고 누구도 소유하지 않았던 땅이라는 식의 표현은 그 자체가 식민적 담론의 수사일 뿐이라고 한다. 켄트리지는 풍경이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순수한 자연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풍경을 벌거벗은 몸, 즉 야위고 멍들고 파괴된 몸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힘차고 율동적인 드로잉들은 고고학적인 발굴과정과 동등해 보인다. 즉 그는 땅을 풀어헤쳐 땅이 스스로를 드러내게 한다. 그의 작업 속에서 땅이라는 풍경은 산업적인 목적으로 채광되든 경작되든 인간의 욕망에 의해 늘 남용되는 현장으로 드러나고 있다.

금년 봄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된 그의 작업은 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과 그 이후의 작업들과 비교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땅에 대한 사회생태학적 접근은 좀더 넓은 지평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신동아 2004년 4월호

SICAF 2004 중에서...

윌리엄 켄트리지 & 퍼펫월드 William Kentridge & Puppet World
감독 윌리엄 켄트리지 외

그 외 참고 사이트.

William Kentridge's Shadow Procession by Telstra Sponsorship
98년 2월의 인터뷰 by OnePeople.com
William Kentridge : Drawings for Projection by PixelPress.org
William Kentridge by goodman-gallery.com
William Kentridge by Barbara Krakow Gallery